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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0년대 대학가, 가을 축제 준비로 파김치가 된 동아리방의 밤
친구들과 모이게 된 구체적인 상황과 브라운관 TV 앞의 분위기 94년도 가을, 캠퍼스는 다가오는 축제 준비로 들떠 있었지만 막내인 94학번 동기들에게는 그야말로 막노동의 연속이었습니다. 주점에서 쓸 천막을 나르고 안주 재료를 다듬다 파김치가 된 우리는, 잠시라도 현실을 도피하고자 대학교 건물 구석에 위치한 낡은 동아리방으로 숨어들었습니다. 바닥에는 페인트통과 붓이 널브러져 있었고, 우리는 대충 박스를 깔고 앉아 땀에 젖은 몸을 기댄 채 구석에 놓인 배불뚝이 브라운관 TV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습니다.
영화가 시작될 때의 기대감과 첫 장면의 강렬함 아무 생각 없이 미친 듯이 웃어보자며 한 동기가 비디오테이프를 기계에 쑤셔 넣었습니다. 이윽고 드르륵 하는 친숙한 기계음이 울리며 테이프가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화면이 밝아지며 등장한 것은 진지한 무협도, 멋진 느와르도 아닌, 어딘가 조잡한 분장의 손오공과 삼장법사가 벌이는 황당한 말장난이었습니다. 고단했던 동아리방의 공기는 그 어이없고 엉뚱한 오프닝 씬 하나로 순식간에 실없는 웃음소리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2. 주성치식 코미디의 정수와 지존보의 엉뚱한 등장 묘사
당시 청춘들을 사로잡은 영화의 매력 포인트와 요즘 입문자들의 관점 최근 유튜브나 커뮤니티에서 홍콩 영화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많이 헷갈려하시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바로 "이 영화는 단순한 슬랩스틱 코미디인가요, 아니면 진지한 판타지 로맨스인가요?" 하는 질문입니다. 사실 당시 우리에게도 주성치 특유의 맥락 없는 코미디 방식은 시각적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급소를 밟히고 바지가 불타오르는 등 온갖 과장된 몸개그가 난무하는 B급 감성은, 세련된 액션 영웅에 익숙하던 우리들에게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헤어 나올 수 없는 강력한 마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주인공의 연기력, 아우라, 또는 당시 대학생들이 느낀 감정적 동조 산적 두목 지존보로 등장하는 주성치는 멋있는 척을 하다가도 한순간에 체면을 다 구기며 처절하게 망가집니다. 요괴들 앞에서 살기 위해 비굴하게 엎드리고 끊임없이 거짓말을 늘어놓는 그의 뻔뻔한 연기력은 그야말로 독보적이었습니다. 축제 준비라는 무거운 짐 아래서 요령도 없이 이리저리 치이기만 하던 스무 살 새내기들은, 비루한 현실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지존보의 짠한 모습에 묘한 동질감과 유쾌한 감정적 동조를 느꼈습니다.
3. 월광보합의 시간 여행, 잊을 수 없는 명장면과 시각적 충격
구체적인 명장면 묘사와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이유 이 영화에서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밈과 패러디를 낳으며 회자되는 최고의 명장면은 바로 시간을 되돌리는 월광보합 씬입니다. 사랑하는 백정정의 죽음을 막기 위해 지존보는 신비한 상자인 월광보합을 열고 "반야바라밀!(국내 비디오 더빙판 기준 뽀로뽀로미)"을 외치며 끊임없이 과거로 뛰어갑니다. 하지만 매번 간발의 차이로 늦어버리고, 숨을 헐떡이며 다시 주문을 외우기를 반복하는 이 장면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묘하게 가슴을 찌르는 페이소스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브라운관 앞 친구들이 느꼈던 숨 막히는 카타르시스나 반응 처음에는 지존보가 과거로 돌아가다 계속해서 다치고 구르는 모습을 보며 좁은 동아리방이 떠나가라 박장대소했습니다. 하지만 그 황당한 달리기 속에 사랑하는 이를 구하려는 지독하고 필사적인 마음이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된 순간, 왁자지껄하던 친구들은 어느새 웃음기를 거두고 배불뚝이 브라운관 화면을 숨죽여 응시했습니다. 슬랩스틱의 끝에서 예고 없이 밀려온 먹먹한 카타르시스는 그날 동아리방에 있던 우리 모두의 마음을 세차게 흔들어 놓았습니다.
4. 동아리방 장판 위, 뽀로뽀로미를 외치며 명대사를 흉내 내던 우리들
영화가 끝난 직후 방바닥에서 어설프게 영화를 따라 하며 장난치던 모습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후속편을 향한 여운이 남기도 전에, 동아리방은 다시 우리들의 유쾌한 무대가 되었습니다. 한 친구가 바닥에 굴러다니던 낡고 두꺼운 전공 사전 하나를 집어 들고는, 월광보합처럼 쫙 펼치며 허공에 대고 "뽀로뽀로미!"를 목청껏 외쳤습니다. 그러고는 영화 속 지존보처럼 미친 듯이 제자리를 달리는 시늉을 했고, 그 어설픈 몸개그에 방 안은 다시 한번 웃음바다로 변했습니다.
그 유쾌한 장난 속에서 피어났던 청춘들의 우정과 낭만, 연대감 너도나도 사전을 빼앗아 들며 축제 준비하기 전으로 시간을 돌려버리자고 소리치며 장판 위를 뒹굴었습니다. 비록 몸은 피곤하고 앞으로 남은 축제 주점 막노동이 막막했지만, 좁고 지저분한 방안에서 서로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비웃으며 어설픈 주문을 외치던 그 순간만큼은 세상 부러울 것 없는 가장 낭만적이고 유쾌한 청춘들이었습니다. 바보 같은 장난 속에서 94학번 동기들의 연대감은 그 어떤 때보다 끈끈해지고 있었습니다.
5. 마무리 : 넷플릭스 시대에 다시 꺼내보는 낡은 비디오테이프의 감성
4K 초고화질이 대체할 수 없는 거친 질감의 그리움 요즘은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 앱을 통해 선명한 화질과 매끄러운 자막으로 주성치의 코미디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화질이 너무 좋아진 탓에 90년대 특유의 엉성한 특수분장과 조잡한 CG가 더욱 도드라져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비가 내리듯 지지직거리던 동아리방의 낡은 브라운관 TV 화면과, 뽀로뽀로미를 외치던 장면을 하도 돌려 보느라 묘하게 테이프가 늘어지고 소리가 갈라지던 그 거친 비디오테이프의 질감이 몹시도 그리워집니다.
영화의 핵심 키워드가 살아 숨 쉬는 영원한 청춘의 일기장 우리가 그토록 이 어이없는 코미디에 열광했던 건, 단지 영화가 웃겨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고단했던 축제 준비의 피로를 안고 옹기종기 모여 앉았던 동아리방의 온도, 그리고 뽀로뽀로미라는 우스꽝스러운 주문 하나로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서로를 향해 웃어대던 우리들의 스무 살이 그 거친 화면 속에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새내기 시절의 우리에게 이 영화는, 시간을 되돌리는 주문을 외칠 때마다 왁자지껄했던 동기들의 얼굴을 눈앞에 불러오는 마법 같은 청춘의 일기장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