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출처 : kmdb |
1. 90년대 대학가, 그날의 상황과 하숙집의 풍경 묘사
짜장면 내기 카드 게임에서 처참하게 깨진 후 모여든 좁은 하숙집 94년도 1학기,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던 94학번 새내기들은 주말마다 모여 소소한 내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날은 친구의 비좁은 하숙집에 모여 중국집 배달 짜장면과 탕수육을 걸고 야심 차게 훌라(카드 게임) 판을 벌였던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한 패배였고, 몇 안 되는 용돈마저 탈탈 털린 우리들은 쓰린 속을 부여잡은 채 좁은 장판 바닥에 널브러졌습니다. 우울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띄워보자며, 승자인 친구가 의기양양하게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코미디 영화 한 편을 빌려왔습니다.
드르륵 기계음과 함께 펼쳐진 짝퉁 도신의 기상천외한 오프닝 하숙집 구석에 놓인 기계에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쑤셔 넣었습니다. 고요했던 방안에 '드르륵' 하고 테이프가 빨려 들어가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내 배불뚝이 브라운관 TV 화면이 지지직거리다 켜졌습니다. 우리는 내심 주윤발의 <도신> 같은 멋진 카드 기술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화면에 등장한 것은 어딘가 어설픈 바보 연기를 하며 시골에서 갓 상경한 주성치(성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어이없는 오프닝에 헛웃음을 짓던 친구들의 시선은 점차 기상천외한 코미디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2. 영화의 주요 테마나 장르적 특징 혹은 주인공의 등장 묘사
당시 청춘들을 사로잡은 영화의 매력 포인트와 요즘 입문자들의 관점 최근 레트로 코미디에 빠져 홍콩 영화에 입문하시는 분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주 묻는 질문이 "이거 주윤발의 <도신>을 대놓고 베낀 건가요?"입니다. 맞습니다. <도성>은 당대 최고의 히트작이었던 <도신>을 철저하게 패러디하면서도, 무논리에 가까운 주성치 특유의 B급 슬랩스틱(모레이타우)을 확립한 전설적인 작품입니다. 진지한 도박판에 초능력이라는 황당한 설정을 끼워 넣은 이 신선한 파격은, 화려한 홍콩 느와르에만 익숙해져 있던 20대 청춘들에게 엄청난 시각적 충격과 폭소를 안겨주었습니다.
주인공의 연기력, 아우라, 또는 당시 대학생들이 느낀 감정적 동조 어수룩한 더듬이 머리를 하고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넘어온 촌뜨기 주성치는 묘한 매력을 발산했습니다. 세련된 도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삼촌에게 이용당하면서도,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순수함으로 도박판을 평정해 나가는 그의 모습은 묘한 쾌감을 주었습니다. 이제 막 낯선 대학 생활과 도시 문화에 적응하느라 어리바리하게 겉돌던 94학번 새내기들은, 비루한 겉모습 속에서도 비범한 능력을 뽐내는 성자의 모습에 묘한 카타르시스와 감정적 동조를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3. 영화 속 가장 잊을 수 없는 명장면과 시각적 충격
구체적인 명장면 묘사와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이유 이 영화에서 오늘날 유튜브 쇼츠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끊임없이 패러디되는 최고의 명장면은 단연 '카드 비비기' 씬입니다. 도박판에서 불리한 패를 쥐게 된 주성치가 손가락에 기를 모아 카드를 미친 듯이 비벼대기 시작하고, 놀랍게도 스페이드 3이 에이스(A)로 서서히 변해가는 과장된 연출은 그야말로 시각적 충격이었습니다. 진지하게 심리전을 펼치던 상대방이 그 어이없는 초능력 앞에 허탈하게 무너지는 모습은 홍콩 영화 역사상 가장 기발하고 배꼽 잡는 명장면입니다.
그 장면을 보며 브라운관 앞 친구들이 느꼈던 숨 막히는 카타르시스나 반응 주성치가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카드를 비비고, 패가 진짜로 바뀌는 장면이 배불뚝이 브라운관을 채우자 좁은 하숙집은 순식간에 초토화가 되었습니다. 방바닥에 누워 있던 친구들은 배를 잡고 구르며 숨이 넘어갈 듯 박장대소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카드 내기에서 져서 용돈을 잃고 우울해하던 우리의 찌질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 어이없는 B급 코미디가 선사하는 폭발적인 유쾌함에 완벽하게 무장해제 되어버렸습니다.
4. 하숙집 장판 위, 영화 속 액션이나 명대사를 흉내 내던 우리들
영화가 끝난 직후 방바닥에서 어설프게 영화를 따라 하며 장난치던 모습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가 무섭게 하숙집은 다시 우리들만의 왁자지껄한 도박판으로 변했습니다. 방구석에 던져두었던 먼지 쌓인 트럼프 카드를 다시 꺼내 든 친구들은, 너도나도 가장 낮은 패를 골라잡고 주성치처럼 양손으로 카드를 미친 듯이 비비기 시작했습니다. "비벼! 꽉 비벼! 에이스로 변해라!"라고 고함을 치며 이마에 카드를 문지르는 어설픈 몸개그에 우리는 다시 한번 바닥을 치며 웃어댔습니다.
그 유쾌한 장난 속에서 피어났던 청춘들의 우정과 낭만, 연대감 아무리 비벼도 스페이드 3은 에이스로 변하지 않았고, 카드는 구겨져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진짜 돈을 잃었던 쓰라림은 이미 주성치의 웃음 바이러스에 날아간 지 오래였습니다. 비좁고 퀴퀴한 하숙집 장판 위에서 구겨진 카드를 들고 서로의 어리석은 짓을 유쾌하게 비웃어주던 그 순간. 우리는 팍팍한 용돈 걱정마저 실없는 장난으로 덮어버릴 수 있는 스무 살 청춘 특유의 끈끈하고 낭만적인 연대감을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5. 마무리 : 넷플릭스 시대에 다시 꺼내보는 낡은 비디오테이프의 감성
4K 초고화질이 대체할 수 없는 거친 질감의 그리움 요즘은 스마트폰 터치 한 번이면 언제든 선명한 4K 초고화질로 주성치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감상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CG가 아닌 어설픈 아날로그 특수효과들은 고화질 화면 덕에 오히려 그 조잡함이 더 뚜렷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카드를 비비는 장면을 수십 번씩 되감아 보느라 묘하게 테이프가 늘어지고 지지직거리던, 그 하숙집의 낡은 브라운관 TV 화면과 거친 비디오테이프의 질감이 몹시도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영화의 핵심 키워드가 살아 숨 쉬는 영원한 청춘의 일기장 우리가 그토록 <도성>의 황당한 초능력에 열광했던 건, 단지 영화가 웃겨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내기에 져서 쓰린 속을 안고 옹기종기 모여 앉았던 하숙집의 끈적한 온도, 그리고 스페이드 3을 에이스로 바꾸겠다며 카드를 구겨대고 아무런 걱정 없이 순수하게 웃어대던 우리들의 스무 살이 그 거친 화면 속에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새내기 시절의 우리에게 이 영화는, 찌질했던 실패조차 가장 크게 웃을 수 있는 코미디로 만들어주었던 유쾌한 청춘의 일기장으로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