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kmdb |
1. 90년대 대학가, 그날의 상황과 동아리방 혹은 친구 집의 풍경 묘사
밤샘 벼락치기를 포기하고 모여든 반지하 자취방과 철가방의 추억 90년대 중반, 중간고사 기간의 도서관은 언제나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가득했습니다. 밤샘 벼락치기를 다짐했던 94학번 동기들은 결국 새벽의 피로와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무거운 전공 서적을 챙겨 학교 앞 좁은 골목에 있는 친구의 반지하 자취방으로 도망치듯 모여들었습니다. 퀴퀴한 습기가 남아있는 방바닥에 대충 주저앉은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생활비를 털어 가장 저렴한 배달 짜장면과 군만두를 시켜놓고 눅눅한 피로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드르륵 기계음과 함께 펼쳐진 기상천외한 요리의 세계 철가방이 도착하고 랩을 벗기는 부산스러운 소리 사이로, 한 친구가 머리를 식히자며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온 검은색 비디오테이프를 기계에 밀어 넣었습니다. '드르륵' 하며 테이프가 돌아가는 기계음과 함께 방 구석의 배불뚝이 브라운관 TV가 환해졌습니다. 평범한 요리 영화일 거라 생각했던 화면 속에서 주성치가 칼을 휘두르며 기상천외한 심사평을 쏟아내는 첫 장면이 시작되자, 퉁퉁 불어가는 짜장면을 비비던 친구들의 시선은 일제히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2. 영화의 주요 테마나 장르적 특징 혹은 주인공의 등장 묘사
요리와 무협의 만남, 요즘 입문자들도 감탄하는 신선한 발상 최근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뒤늦게 이 영화에 입문한 요즘 세대 분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요리 서바이벌의 원조 격인데 무협까지 섞여 있어서 너무 신선하다"는 반응을 자주 남기곤 합니다. 90년대 당시 우리에게도 요리를 마치 무공을 겨루듯 표현하는 주성치 특유의 연출은 엄청난 시각적 충격이었습니다. 식재료를 장풍으로 다듬고 칼질 하나에 내공이 실리는 과장된 B급 코미디는, 시험공부의 압박에 시달리던 20대 청춘들의 스트레스를 단숨에 날려버릴 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안하무인 식신에서 밑바닥으로 추락한 주인공의 짠한 페이소스 영화 초반부, 세상에서 가장 거만하고 안하무인이었던 '식신' 주성치가 음모에 빠져 한순간에 빈민가로 추락하는 과정은 묘한 쾌감과 동시에 먹먹함을 안겨주었습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잃고 길거리에서 어묵을 팔며 재기를 꿈꾸는 그의 모습은 그저 웃기기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투명한 미래와 잦은 실패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던 우리 대학생들은, 비루한 밑바닥에서도 뻔뻔하게 다시 일어나는 그의 모습에서 깊은 감정적 동조와 위로를 받았습니다.
3. 영화 속 가장 잊을 수 없는 명장면과 시각적 충격
슬픔을 담아낸 궁극의 요리 암연소혼반과 양파의 시각적 충격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명장면은 후반부 요리 대회에서 완성되는 '암연소혼반(슬픔에 넋을 잃는 밥)' 씬입니다. 화려한 산해진미를 물리치고, 주성치가 내공을 담아 구워낸 평범한 돼지고기 덮밥 한 그릇. 심사위원이 그 밥을 먹고 환희에 차 바닥을 뒹굴다가, 양파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터뜨리는 과장된 연출은 홍콩 코미디 역사에 길이 남을 압도적인 명장면이자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강력한 밈(Meme)이 되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브라운관 앞 친구들이 느꼈던 숨 막히는 카타르시스나 반응 심사위원이 밥 한 숟가락에 눈물을 흘리는 과장된 모습을 보며, 반지하 방에 모여 있던 우리는 먹고 있던 군만두를 뿜을 뻔하며 박장대소했습니다. 하지만 웃음의 끝자락에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요리에 담아낸 주성치의 진심이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비록 우리가 먹고 있는 건 불어 터진 동네 배달 짜장면이었지만, 배불뚝이 브라운관 앞에서 함께 박장대소하며 넘겼던 그 음식은 영화 속 암연소혼반 부럽지 않은 유쾌한 카타르시스와 포만감을 안겨주었습니다.
4. 동아리방 혹은 친구 집 장판 위, 영화 속 액션이나 명대사를 흉내 내던 우리들
나무젓가락을 들고 어설프게 소림사 주방장을 흉내 내던 모습 영화가 끝나자마자 반지하 자취방은 어느새 소림사의 주방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한 친구가 나무젓가락을 검처럼 쥐고는 빈 짜장면 그릇 위로 과장된 손놀림을 보이며 "나의 내공을 이 그릇에 담았노라!"며 허세를 부렸습니다. 그 모습에 다른 동기는 질 수 없다는 듯 의자 위로 뛰어올라, 양파 썰기에 당해 눈물을 흘리는 심사위원 흉내를 내며 눈을 비비고 바닥을 구르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 유쾌한 장난 속에서 피어났던 청춘들의 우정과 낭만, 연대감 시험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이미 방구석으로 밀어둔 지 오래였습니다. 우리는 바닥에 흘린 춘장 자국을 닦으면서도, 주성치의 엉뚱한 대사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배가 아프도록 웃어댔습니다. 고급 레스토랑의 비싼 요리가 아니어도 좋았습니다. 비좁고 눅눅한 방안에서 저렴한 배달 음식 하나를 두고 최고의 진수성찬인 양 장난을 치던 그 왁자지껄한 소란 속에서, 우리는 그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우정과 낭만을 든든하게 채워가고 있었습니다.
5. 마무리 : 넷플릭스 시대에 다시 꺼내보는 낡은 비디오테이프의 감성
4K 초고화질이 대체할 수 없는 거친 질감의 그리움 요즘은 스마트폰 클릭 한 번이면 세계 최고의 셰프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선명한 4K 초고화질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식의 윤기와 색감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실적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비가 내리듯 지지직거리던 반지하 방의 낡은 TV 화면과, 암연소혼반이 뿜어내는 황당한 황금빛 오라(Aura)를 보느라 테이프가 늘어지던 그 거친 비디오테이프의 질감이 몹시도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요리에 담긴 진심이 살아 숨 쉬는 영원한 청춘의 일기장 우리가 그토록 <식신>의 과장된 요리 무협에 열광했던 건, 단지 영화가 웃겨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시험의 압박을 피해 옹기종기 모여 앉았던 반지하 방의 끈적한 온도, 그리고 불은 짜장면 한 그릇에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순수하게 웃어대던 우리들의 스무 살이 그 거친 화면 속에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새내기 시절의 우리에게 이 영화는, 화려함보다 정성이 담긴 요리가 최고라는 투박한 진심과 함께 동기들의 유쾌한 땀 냄새를 간직하고 있는 영원한 청춘의 일기장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