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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의 <패왕별희>(1993): 수업이 없는 평일 혼자, 낡은 자취방에서 마주한 영원한 '인생 영화'

 

장국영의 <패왕별희>(1993): 수업이 없는 평일 혼자, 낡은 자취방에서 마주한 영원한 '인생 영화'
출처 : kmdb

1. 1990년대 상, 하편의 비디오테이프와 낡은 자취방을 채운 거대한 비극

수업 없는 평일의 적막 속에서 마주한 중국 현대사와 한 인간의 처절한 운명

1990년대 중후반의 대학가, 수업이 비어버린 평일 오후의 낡은 자취방은 특유의 나른함과 묘한 적막감이 감도는 공간이었습니다.

갈 곳 잃은 청춘의 시간을 채우기 위해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온 <패왕별희>는 상, 하편 두 개의 테이프로 나뉘어 있을 만큼 무려 3시간에 달하는 엄청난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대작이었습니다.

먼지 쌓인 VCR에 첫 번째 테이프를 밀어 넣었을 때, 좁고 초라했던 자취방은 순식간에 1920년대 군벌 시대부터 문화대혁명에 이르는 격동의 중국 대륙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시대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오직 경극과 한 남자만을 바라보았던 데이(장국영)의 처절한 생애는, 불투명한 미래를 안고 웅크려 있던 1990년대 20대 청춘들의 가슴에 숨 막히는 몰입감과 묵직한 돌덩이 같은 여운을 안겨주었습니다.

평일 오후의 고요함 속에서 3시간의 서사가 모두 끝난 뒤 멍하니 브라운관을 바라봐야만 했던 그 압도적인 감정적 파도야말로, 이 작품이 수많은 이들의 '영원한 인생 영화'로 각인된 첫 번째 이유일 것입니다.

2. 화려한 경극의 색채와 섬세한 클로즈업이 포착한 예술과 광기

극단적인 시각적 대비와 장국영의 눈빛을 담아낸 미장센의 극치

이 영화를 논할 때 영화사적으로 가장 탁월한 기술적 성취는, 천카이거 감독과 구창웨이 촬영감독이 빚어낸 압도적인 색채 대비와 섬세한 카메라 워킹에 있습니다.

경극 무대 위 우희(장국영)의 화려한 붉은색과 황금빛 의상은 문화대혁명 시기의 잿빛 인민복 및 푸른빛의 차가운 현실과 극단적으로 충돌하며, 예술이 짓밟히는 폭력적인 시대상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은유합니다.

특히 카메라는 현실과 무대의 경계선이 무너져 내리는 데이의 심리를 묘사할 때, 짙은 경극 분장 너머로 흔들리는 그의 공허한 눈동자를 극단적인 클로즈업(Extreme Close-up)으로 치요하게 쫓습니다.

화려한 무대 조명(Lighting) 아래서 미세하게 떨리는 안면 근육의 움직임 하나까지 잡아낸 이 숨 막히는 연출은, 텍스트나 대사가 아닌 오직 시각적 정보만으로도 한 인간의 처절한 고독과 예술적 광기를 관객의 피부에 직접적으로 각인시켰습니다.

3. 격동의 근현대사와 퀴어 시네마를 융합한 칸 영화제 최고 영예

황금종려상 수상과 '우희' 그 자체가 되어버린 장국영의 메소드 연기

영화사적으로 <패왕별희>는 1993년 제46회 칸 영화제에서 중화권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아시아 영화의 위상을 전 세계 최정상으로 끌어올린 불멸의 마스터피스입니다.

반세기에 걸친 중국의 참혹한 현대사(항일전쟁, 국공내전, 문화대혁명)를 배경으로, 전통 예술의 몰락과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개인의 미시사를 소름 돋도록 정교하게 교직해 냈습니다.

"나는 본래 사내아이로 태어나, 계집아이도 아닌데"라는 경극 대사를 끊임없이 강요받으며 결국 자신을 여성인 '우희'로 정체화해 버리는 서사는, 당대 아시아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깊이 있는 퀴어(Queer) 서사이자 심리 드라마의 정점이었습니다.

극중 인물과 완벽하게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되어버린 장국영의 소름 끼치는 메소드 연기는 영화의 경계를 넘어, 이후 전 세계 수많은 예술 영화 감독들과 배우들이 넘어야 할 가장 거대하고 아름다운 산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4. <패왕별희> 단골 Q&A

Q. 영화 속 장국영의 경극 동작과 몸짓은 대역이 연기한 것인가요?

A. 놀랍게도 영화 속 데이가 보여주는 유려한 경극 동작과 섬세한 손짓은 어떠한 대역 없이 장국영 본인이 직접 소화해 낸 결과물입니다.

그는 완벽한 '우희'가 되기 위해 촬영 수개월 전부터 베이징에 머물며 전문가들에게 혹독한 발성과 안무 훈련을 받았습니다. 비록 고음의 경극 창법 일부는 전문 경극 배우의 목소리를 빌렸지만, 시선 처리와 미세한 발걸음 등은 실제 경극 전문가들조차 경악할 정도로 완벽한 예술적 경지를 팩트 기반으로 훌륭하게 보여주었습니다.

5. 평일 낮의 적막 속에서 마주한 가장 아름답고 처절한 핏빛 궤적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스스로 목을 그은 찬란한 예술가의 초상

<패왕별희>는 3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화려한 예술의 정점과 추악한 인간의 밑바닥을 가감 없이 오가며 관객의 영혼을 쥐고 흔듭니다.

평생을 바쳐 사랑했던 샬로(장풍의)에게 배신당하고, 시대의 폭력 앞에 짓밟히면서도 끝내 경극의 환상 속에서 자신을 완성하려 했던 데이의 마지막 선택은 벼락같은 충격을 안겨줍니다.

현실의 패왕은 무릎을 꿇고 변절했지만, 무대 위의 우희는 끝까지 절개를 지키며 진짜 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엔딩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가장 비극적이고 아름다운 마침표였습니다.

수업이 없던 평일 낮, 낡은 자취방의 적막 속에서 이 거대한 슬픔과 마주했던 우리들의 청춘은, 훗날 장국영이라는 불세출의 배우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하며 다시 한번 이 영화를 뼈저리게 소환해야만 했습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그의 삶과 <패왕별희>의 궤적은 서로 얽혀, 시대가 지나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장 처절하고 눈부신 '영원한 인생 영화'로 우리 가슴속에 깊이 베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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